Foreword for Eyeproof
November
2023
본 글은 그래픽 디자인 전시가 왜 이렇게 요상해 보이는지에 대한 일종의 해명이다. [1] 전시 기획의 의도가 궁금한 사람들은 참고하길 바란다. 이 글을 읽지 않아도 전시 감상에는 전혀 무방하다.
해당 전시는 현대미술 단체가 아닌 편집디자인 학술주체인 Design Optical Truth (DOT, 도트)[2]에서 주최되었다. 그리고 디자이너가 일종의 작가가 되어서 전시를 하는 것을 목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회의 방향성인 편집디자인 학술 주체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했음을 밝힌다.
전시는 기획 단계에서 디자인적인(우리는 어떠한 시대와 장소에서 누구를 관객으로 삼고 있는가?), 편집적인 (어떠한 내용들을 드러내고 어떠한 내용들을 감출 것인가?), 혹은 편집디자인적인(배치와 순서, 그리고 덩어리의 비례를 조율하는 일이 전시라는 형식에 어떠한 힘을 발현하는가?) 물음을 담고 능동적으로 큐레이팅되었다.
어쩌면 해당 전시의 기획 과정에서 미루어 볼 때, 이 전시의 기획 과정은 디자인 전시에 대한 일종의 비평 과정이었으며, 결과물을 제작하는 노력은 비평이 되는 것을 지향한 노력이었다. 그러기에 디자인 이론의 어휘나 주제가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사과를 드리며, 의도나 맥락과 완전히 분리되어도 충분히 감각이 즐거운 전시였기를 바란다. [3] 그리고 작품들이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조형 작품’이 아니기에 디자인 전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그러한 질문과 디자인 정의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조형 작품으로 봤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본 전시를 그래픽 디자인 전시로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주제 자체가 그래픽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작가주의적 디자인의 의미를 재검토하는 에세이 «디자이너는 작가인가 Designer as Author»에서 뉴욕 2X4(투바이포)의 설립자 마이클 록은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정리를 인용한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내용을 말하는 방식이다.” 그 후, 록은 자신의 에세이가 파생한 오해를 풀기 위해 «내용은 집어치워Fuck Content»에서 해당 정리를 다시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힌다. “우리에게도 ‘어떻게’는 곳 ‘무엇’이 된다. 그렇게 디자이너의 영구적인 내용은 ‘디자인’ 그 자체다.”
다시 석의하자면, 디자인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 보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며, 따라서 형식을 다루는 실천이 된다. 이러한 디자인의 맥락 안에서 도트는 형식 자체를 내용으로 삼아, 그래픽 디자인 전시의 맥락의 특수성을 반영하고자 한다. 즉, 이 전시가 담아내고자 하는 것은 형식에 대한 ‘자기지시적 속성[4]’의 물음이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디자인 저술 «디자인과 미술: 1945년 이후의 관계와 실천» 속 네덜란드의 디자인 스튜디오 엑스페리멘탈 젯셋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그래픽 디자인을 미술로 보지 않지만 미술을 디자인의 한 형식으로 본다. 비록 미술을 정의하는 것이 어렵다 할지라도 미술의 맥락을 정의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전시 공간, 갤러리, 미술관, 미술 잡지, 미술 출판사, 미술사, 미술 이론 등등 명백한 기반 구조가 존재한다. 미술은 이러한 특정 구조 안에서 기능하도록 의도된 사물, 개념, 활동의 생산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보기에, 이러한 생산물은 분명 디자인의 특별한 형식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해당 전시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디자인이라는 형식이 가지는 역할을 ‘새롭게 바라보고자’한다. 전시를 통해 편집 디자인을 확장시키고, 또 해체하는 기능을 수행하고자 한다. 도트는 편집디자인 학회라는 정체성을 지켜왔으며 과제전에 불과한 평면적인 교내전시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노력해왔다. 본 전시도 예외는 아니다.
기획 전반에 걸쳐서 틈틈히 적어보면서,
큐레이터 박준희
1
확실히 해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있을 것을 알기에, 그 중 진심으로 알고자하는 사람이 있기를 희망하는 마음에 저술한다. 그러한 사람이 아니라면 전시를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선배들의 작업이 궁금한 기특하고 요상한 한 후배가 읽고 있겠지.
2
2023년 도트의 공식적인 소개는 다음과 같다. “2010년부터 시작한 DOT(Design Optical Truth)는 편집디자인 학생 학회입니다. 도트는 디자인을 보는 안목과 가치에 대해 함께 질문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터들은 학생 학회로서, 편집디자인의 경계를 확장하고 또 해체하며 그 가능성을 탐구하는 자유로운 활동과 연구를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출저 : 도트 인스타그램)
3
‘보는 재미’라는 말은 결코 얄팍한 말이 아니다. 각 작품들은 자신을 편집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이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보면 흥미로운 점들을 분명히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또한 작품을 보는 방식을 따로 정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답이 정해져 있는 전시 또한 아니다.
4
최성민 최슬기, 누가 화이트큐브를 두려워하랴, p.59 참고.